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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tablealign=right><table width=500><tablebordercolor=#536349><rowbgcolor=#536349><rowcolor=#fff><tablebgcolor=#fff,#111> {{{+1 '''12.13 군사반란'''}}}[br]十二十三軍事叛亂[br]Coup of December Thirte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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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nopad> [[파일:1979년 12월13 벨포르시청.png|width=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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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벨포르 시청을 장악한 반란군}}} ||
4||<-2><rowbgcolor=#536349><rowcolor=#fff> '''일시''' ||
5||<-2> 1949년 12월 13일([age(1949-12-13)]주년) ~ 12월 14일 ||
6||<-2><rowbgcolor=#536349><rowcolor=#fff> '''장소''' ||
7||<-2> 벨포르 시 ||
8||<-2><rowbgcolor=#536349><rowcolor=#fff> '''원인''' ||
9||<-2> 군부의 정권 찬탈 기도 ||
10||<-2><rowbgcolor=#536349><rowcolor=#fff> '''교전군''' ||
11||<rowbgcolor=#536349><rowcolor=#fff> '''진압군''' || '''반란군''' ||
12||<width=50%> 루이나 임시정부[br]루이나 국군 || 군부(친 비달파) ||
13||<-2><rowbgcolor=#536349><rowcolor=#fff> '''결과''' ||
14||<-2> '''반란군 진압 실패, 비달의 군권 장악''' ||
15||<-2><rowbgcolor=#536349><rowcolor=#fff> '''영향''' ||
16||<-2> '''[[12.23민주시위]] 및[br][[10.24 시민혁명]] 발발''' ||
17||<-2><rowbgcolor=#536349><rowcolor=#fff> '''피해''' ||
18||사망자 30명[br]부상자 최소 48명 ||사망자 13명[br]부상자 최소 20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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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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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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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3 군사반란은 1949년 12월 13일 루이나 벨포르 시에서 발생한 군부 주도의 정권 탈취 사건이다. 반란군은 친비달파 장교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루이나 국군 내 일부 부대가 이에 동조하여 벨포르 시청과 주요 정부 기관을 신속히 점거했다. 당시 루이나 임시정부는 반란 소식을 접하고 진압을 시도했으나, 지휘 체계 혼란과 일부 부대의 이탈로 인해 방어에 실패했다. 결국 12월 14일, 임시정부는 붕괴되었고 반란군은 루이나의 실질적인 통치권과 군권을 장악하였다.
24
2512.13 군사반란은 이후 루이나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바꿨으며, 국민 저항운동인 12.23 민주시위와 장기적으로는 10.24 시민혁명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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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가담자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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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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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949년 8월 27일 오전 4시, 루이나 초대 대통령 조지 레이먼드가 암살되었다는 비보가 전해지자, 국방부 회의실에서는 각료들이 서둘러 비상조치에 돌입했다. 당시 부총리 겸 경제기획청장이었던 시몬 하워드는 "조지 레이먼드 대통령이 서거했고, 범인은 정보국장 루크 맥스웰이다"라고 알리며,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가원수직이 비어 있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헌법 규정에 따라 국무총리 리처드 에반스가 루이나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결국 리처드 에반스는 대통령 권한대행 직을 수락했고, 곧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루이나 육군참모총장 에드워드 스펜서가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정국을 함께 이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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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그러나 리처드 에반스는 권한대행 수락 직후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부터 서부 해안 지역을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계엄법 제9조에 따라 '''전국이 아닌 부분 계엄일 경우 군 통제권이 국방장관에게 넘어간다'''는 규정을 간과한 조치였다. 에반스는 정치에 휘말리는 것을 꺼려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 했지만, 그로 인해 실질적 권력은 계엄사령부로 넘어가게 되었고, 합동수사본부장이 된 군보안사령부 사령관 [[비달 파브르]]가 점점 권력의 중심 인물로 부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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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마이클 러틀리지는 [[비달 파브르]]와 개인적 친분이 깊었기에, 후일 계엄사령관 에드워드 스펜서와 비달 간의 권력투쟁이 벌어질 때 비달을 적극적으로 감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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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한편 에반스는 원칙론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 했기에, 계엄사령부의 운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모든 군사 보고를 국방장관을 통해 처리하도록 지시했다. 이로 인해 [[비달 파브르]]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서 수사와 정보기관을 장악할 기회를 얻었고, 군부 내 실질적인 실력자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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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그 당시 루이나 육군은 비밀 사조직인 "노던 소사이어티"가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은 비달 파브르와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었고, 주요 부대와 요직들을 하나둘 차지하고 있었다. 9보병사단은 비달의 절친인 '''토머스 브래너'''가 사단장으로 있었으며, 특수전사령부는 사령관만 '''찰스 밀턴'''일 뿐, 여단장들은 모두 노던 소사이어티 출신인 '''헨리 파이크''', '''빌리 셔먼''', '''아이작 루이스'''로 포진해 있었다. 수도경비사령부 역시 사령관은 '''로버트 맥켄지'''였지만, 실질적 권한은 참모장 '''노먼 하트'''에게 있었고, 그는 친비달 인사로 분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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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그 사이 대통령 경호를 맡던 경호실장 '''루이스 고든'''과 정보국장 '''루크 맥스웰'''이 동시에 무력화되면서, 사실상 정보 활동을 담당할 기관은 군보안사령부 하나만 남게 되었다. [[비달 파브르]]는 이 상황을 이용해 검찰, 경찰, 중앙정보부, 군검찰까지 사실상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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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월 28일, 비달은 수사를 명목으로 중앙정보부 부국장 '''제럴드 퀸''', 검찰총장 '''사이먼 콜''', 치안본부장 '''애런 블레어'''를 소환해, 협조하지 않으면 체포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이에 이들 기관 수장들은 비달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다. 이후 비달은 정부 각 부처 차관들까지 호출하여 사실상 '실질 대통령'처럼 군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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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비달은 수사 중 대통령 비서실장 '''벤자민 크로포드'''의 집에서 거액의 수표 뭉치(약 9억 루이나 달러 상당)를 발견했다. 이 중 6억을 대통령 유족인 '''소피 레이먼드'''에게 전달하고, 5000만을 '''마이클 러틀리지'''에게 넘겼으며, 마지막 2억을 합참의장이자 계엄사령관인'''에드워드 스펜서'''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스펜서는 이를 거절하고 오히려 비달의 월권을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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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에드워드 스펜서는 이러한 비달의 독주를 제어하고자 군 인사 개편을 계획했다. 특히 수도경비사령관에는 강직한 인물로 평가받던 '''다니엘 모건''' 소장을 임명해 노던 소사이어티의 움직임을 억제하려 했다. 또한 비달을 북부 국경방어사령관으로 좌천시키려는 계획도 비밀리에 추진했다.
47
48그러나 국방차관 '''피터 맥그로'''를 통해 이 계획이 노던 소사이어티 쪽으로 새어 나갔고, 이미 군 내부 요직을 장악하고 있던 노던 소사이어티는 스펜서의 움직임을 빠르게 포착했다. 이로 인해 루이나는 머지않아 군부 내 심각한 충돌과 대규모 군사반란을 맞이하게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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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계엄사령관 체포 계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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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결코 좌시할 생각이 없었던 '''비달 파브르'''와 노던 소사이어티는 '''에드워드 스펜서''' 총장이 자신들을 숙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선수를 치기로 결심했다. 비달은 10.27 사건 당시 스펜서가 조지 레이먼드 대통령 시해범인 '''루크 맥스웰'''과 모종의 연관이 있었다는 의혹을 퍼뜨리면서, 스펜서를 강제 제거하고 군부의 통제권을 완전히 장악하려 했다.
51
52비달은 노던 소사이어티 간부들과 긴밀히 회의를 거쳐, 1949년 12월 13일을 기해 수도권의 핵심 부대를 움직여 작전을 개시하기로 결의했다. 그들의 표면적 명분은 "조지 레이먼드 암살 사건과 관련해 에드워드 스펜서를 조사하기 위한 긴급조치"였다. 당시 군부와 정부는 이미 합동수사본부를 통해 스펜서에 대해 '혐의 없음'을 공식 발표한 상태였지만, 비달은 일방적으로 "새로운 수사 결과, 스펜서가 루크 맥스웰과 사전 접촉했던 정황이 포착됐다"고 주장하며 강제 체포를 시도했다.
53
54설령 반란군 주장대로 스펜서의 혐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당시가 아무리 대통령의 사망으로 인한 비상계엄 하라고 한들, 혐의자를 합동수사본부로 소환하여 조사하려면 당시의 법률에 의하더라도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임의 동행에 의하는 것이 원칙이고, 강제로 연행하려면 검찰관이 청구하여 관할관이 발부한 구속영장이 있어야 했다. 만에 하나 긴급한 사유로 사후영장을 받는다고 해도 검찰관의 정식 지휘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55
56그러나 당시 반란군 측은 절차를 거쳐 관할관의 영장을 발부받기는커녕 검찰관의 긴급구속 지휘를 받지도 못한 상태였고, 계엄사령관은 자신들의 상관이므로 군 지휘 체계에 따른 명령에 의해 출석을 강제할 수도 없었다. 결국 반란군은 무장한 헌병대 병력으로 공관촌을 점거하고 보안사령부 대령을 위시한 합동수사본부 수사관들이 육군참모총장 공관으로 진입해 에드워드 스펜서에 대한 강제 연행을 시도하면서 계엄사령관의 상관인 대통령의 사후재가를 동시에 받아 자신들의 불법행위를 정당화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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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작전 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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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1949년 12월 12일 저녁, '''비달 파브르'''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심한 노던 소사이어티 소속의 주요 장교들은 각자 준비를 마친 후 벨포르 남부요새 근처의 수도경비사령부 제 30경비단에 집결하였다. 당시 30경비단과 33경비단은 벨포르 방위의 정예부대로, 수경사 소속이기는 했지만 수경사령관도 무장 출입은 불가할 정도로 독립적인 부대였기 때문에 이들이 몰래 모이기에는 딱 좋았다. 이날의 작전명은 '생일집 잔치'. 이들의 본래 계획은 보안사의 합수부 수사관들과 육군 수경사의 헌병들을 동원하여 참모총장 공관에서 '''에드워드 스펜서'''를 납치해서 합수부로 데리고 가는 동시에, '''비달 파브르'''는 대통령에게 가서 '''스펜서'''의 추가 혐의를 조사하기 위한 합수부로의 체포에 대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이 체포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r6
59
60[쓰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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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작전 성공 ===
62
63== 반란의 성공 원인 ==
64=== 군을 장악했던 사조직 ===
65=== 반란 당시 환경 ===
66=== 진압군의 확전 주저 ===
67
68== 사후 결과 ==
69=== 진압군 측 주요 인사들에 대한 처리 ===
70=== 정권을 장악한 반란군 ===
71
72== 재판 ==
73=== 사면 ===
74
75==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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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0.24 시민혁명 당시, 분노한 시민들이 무장 투쟁을 통해 계엄군을 몰아내고 대통령실로 쳐들어가 비달 파브르를 사살했다. 이 사건은 루이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었으며, 국가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시민들의 강력한 의지와 투쟁을 상징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비달 파브르는 국가를 혼란에 빠뜨린 내란의 주범으로 지목되었고, 그의 행동은 국가 질서의 근본적인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시민들은 그의 행위에 분노하며 무장 투쟁을 벌였고, 결국 계엄군을 몰아낸 후 대통령실로 침입해 비달 파브르를 벨포르 시청 광장 앞으로 끌고 나온 후, 성기와 귀를 잘라내고, 머리를 삭발한 후 비달 파브르의 가족을 사살하고 시민혁명의 주동자들은 자신들이 작성한 선고문을 읽은 후, 비달 파브르를 총살했다.
77
78비달 파브르의 사망은 법적으로는 즉각적인 처벌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가 처벌받기 전에 이미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민주정부가 구성된 이후, 법원은 그의 내란죄와 국가적 범죄에 대한 사후 재판을 진행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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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내란행위에 대한 승인여부 (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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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법원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도 12·13 군사반란과 그에 따른 집권에 대해서 주권자인 국민의 일반의지(General will)에 따른 사후적 승인을 부정한다.
81> '''반란수괴·반란모의참여·반란중요임무종사·불법진퇴·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상관살해·상관살해미수·초병살해·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내란중요임무종사·내란목적살인·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82>대법원 196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83>----
84> 【판시사항】
85> [1]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하여 정권을 장악한 경우의 가벌성 여부'''(적극)'''
86>----
87> 【판결요지】
88> [1] [다수의견] 우리 나라는 제헌헌법의 제정을 통하여 국민주권주의, 자유민주주의, 국민의 기본권보장, 법치주의 등을 국가의 근본이념 및 기본원리로 하는 헌법질서를 수립한 이래 여러 차례에 걸친 헌법개정이 있었으나, 지금까지 한결같이 위 헌법질서를 그대로 유지하여 오고 있는 터이므로,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하여 폭력으로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의 권능행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고 정권을 장악한 후 국민투표를 거쳐 헌법을 개정하고 개정된 헌법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여 왔다고 하더라도 그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하여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우리 나라의 헌법질서 아래에서는 헌법에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폭력에 의하여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 따라서 그 군사반란과 내란행위는 처벌의 대상이 된다.
89위 판결문에서 '헌법에 정한 민주적 절차'라는 것은 선거 또는 투표를 뜻한다. [[루이나]]는 대의제민주주의(간접민주주의) 국가로서 선거 또는 투표가 아닌 폭력에 의한 불법적인 집권을 원칙적으로 부정한다.
90>헌법재판소 1965. 12. 15. 선고 95헌마221·233·297(병합) 전원재판부〔취하〕 불기소처분취소
91>----
92> 라. 피의자 비달 파브르가 임시비상입법기구 등을 통한 간접선거에 의하여 두 차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나 제5공화국 헌법개정안이 국민투표에 의하여 통과된 것은 그것이 비록 형식적으로는 당시의 헌법과 법률의 규정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그 진상이 은폐되고 계엄령 하의 강압적인 분위기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거나 국민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할 수 없었던 대의기관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어서 이를 가리켜 국민이 자유롭게 그들의 주권적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상태에서 피의자들의 이 사건 내란행위에 대하여 승인을 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고,''' 정상적으로 투표가 진행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비달 파브르 측은 이 사건 내란행위에 의하여 창출된 제5공화국의 질서가 국민의 저항으로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고 '''국민의 의사에 따른 새로운 헌법질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그 진상이 정확히 규명되지 아니한 채 국민의 상대적인 다수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이로써 이 사건 내란행위에 대하여 국민의 승인이 있은 것으로 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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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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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통치행위에 대한 사법심사 가능성 (긍정) ===
95> '''반란수괴·반란모의참여·반란중요임무종사·불법진퇴·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상관살해·상관살해미수·초병살해·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내란중요임무종사·내란목적살인·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96>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97>----
98> 【판시사항】
99> [14]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행위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한정 적극)'''
100>----
101> 【판결요지】
102> [14] 대통령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 행위는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행위라 할 것이므로, '''그것이 누구에게도 일견하여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것으로서 명백하게 인정될 수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라면 몰라도,''' 그러하지 아니한 이상 그 계엄선포의 요건 구비 여부나 선포의 당·부당을 판단할 권한이 사법부에는 없다고 할 것이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하여진 경우에는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다.'''
r1

(새 문서)
103== 형사재판 판결문으로 바라본 군사반란 당시 상황 ==
104
105== 중앙 대법원 결정문으로 바라본 군사반란 당시 상황 ==
106
107== 대중매체 ==
108=== 영화 ===
109=== 드라마 ===
110=== 예능 ===
111=== 다큐멘터리 ===
112
113== 여담 ==
114
115== 관련 문헌 ==
116